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토 케이카쿠 (문단 편집) == 기타 == [[무사시노 미술대학]] 출신으로, 데뷔 이전에는 웹디자이너로 일했다고 한다. 이것때문에 블로그에서는 종종 자신이 다녔던 대학을 무대로 한 [[허니와 클로버]]를 언급하기도 한다. [[아가씨 발끈하다]]의 [[시노후사 로쿠로]]와는 선후배관계로, 아가씨 발끈하다의 이른바 츤데레 병명인 '[[아가씨, 발끈하다#s-3|요제프 츤데레 박사형 쌍극형 퍼스널리티 장애]]'는 이토 케이카쿠가 만들어낸 조어. [[아키소라]]의 [[이토스기 마사히로]] 역시 동문으로 아키소라 마지막권의 후기만화에서 그의 죽음를 애도했다. 작품 내용중의 주인공들의 아버지가 불치병으로 죽는 내용과 겹치는지라 좀 묘하다. [[코지마 히데오]]와 같이 영화광으로, 자신의 블로그인 이토 케이카쿠 제 2상위에는 영화에 대한 리뷰가 꽤 많이 올려져 있다. 코지마 히데오와는 단순한 팬-제작자 관계를 넘어 [[메탈기어]] 1 때부터 동인지를 냄으로서 알고 지내게 되었고 코지마는 [[메탈기어 솔리드 2]]를 제작 중에 탱커 편까지 완성된 것을 들고 미리 플레이 하게 해주거나 훨씬 전부터 기획중이던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를 사후 그에게 헌사하기도 했다. >“아들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오른쪽 다리의 무릎부터 아래를 관장하는 신경에서 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했고 오른쪽 다리의 감각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약 2년 전 양쪽 폐에 전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때 아들은 ‘'''두 다리가 없어도 괜찮으니까 앞으로 20~30년 살고 싶다. 쓰고 싶은 것이 아직 많다'''’라고 했습니다.” >---- >2009년 7월 ‘세이운상’ 수상식, 고인의 어머니 수상소감 일부. 2002년에 신경에서 암이 발견되고 난뒤 2007년에는 양쪽 폐에 전이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은 것을 보면 의지가 대단했었던 듯. >이토 케이카쿠가 소설 작가로서 지낸 것은 짧은 생애의 마지막 3년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귀중한 3년간을 SF를 쓰는 일에 사용해준 것은 일본 SF계에 있어 엄청난 행운이었다. 「학살기관」은 발매 처음부터 세계 SF의 최첨단으로 평가를 받았다. 2000년대 최초의 10년을 대표하는 일본 SF가 바로 이 「학살기관」인 것이다. 일본 SF의 새로운 태동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이토 케이카쿠였고 2010년대 일본 SF의 선두에 서서 이끌어갈 사람도 이토 케이카쿠였어야 했다. 그러나 「학살기관」의 간행으로부터 불과 1년 9개월 뒤인 2009년 3월 20일, 이토 케이카쿠는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오조리 노조무의 [해설]에서 발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